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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는 분리되지 않는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11. 11. 08:00
체데크는 강한 자들에게 시달리는 연약한 자들이 이스라엘이란 계약공동체의 일원으로 살 수 있도록 물질적, 사법적 보호와 돌봄을 베푸는 행위, 즉 분배와 인정 모두를 포함하는 실천을 의미한다.
헤세드는 반드시 체데크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체데크의 핵심에 헤세드가 있다. 따라서 사랑과 정의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공평과 정의 안에 이미 사랑과 정의가 모두 들어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공평과 정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와 십자가를 통해 공평과 정의를 온전히 이루셨고, 샬롬의 세상을 성취하셨다. 따라서 공평과 정의가 없는 십자가는 가짜 십자가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반드시 "페어처치"가 되어야 한다. "페어처치"만이 진정한 교회다. 그런데 하나의 교회만으로는 온전한 "페어처치"가 될 수 없다. 나무 하나로 숲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형교회조차도 하나의 큰 나무일 뿐이다. 교회들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 숲을 이루면서 공교회성을 회복할 때 온전한 "페어처치"가 될 수 있다. 또한 교회들로만 온전한 숲을 이룰 수도 없다. 지역에 있는 다양한 나무들과 같이 어울려서 함께 아름다운 숲을 가꿔나갈 때 "페어처치"의 온전한 모습이 구현된다.
이도영 <페어처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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