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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버려야겠다. 누구도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착한 얼굴을 벗어야 그 뒤가 진짜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알 수 있고, 그래야 나를 보는 이들도 가면 쓰지 않고 만날 결심을 할 테니까. 스스로 감독하고 주연해온 '착한 사람' 연기에 이제 종말을 고한다. 이주희 중에서
아. 어쩌면 병렬 처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나를 희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마음부터 건강히 지켜내야 스무살 자식의 힘겨움도, 여든 살 부모님의 처량함도 함께할 수 있을 테니. 하고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여유 있게 오랫동안, 여든과 스물 사이에 머물러야 겠다. 이주희 중에서
살다 보니 그놈의 정의라는 것도 참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편향이 생긴다.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 신념으로 만들어 박제해놓고는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잘못된 정의를 얼마나 많이 마주했는지.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에, 자의적으로 해석한 정의를 들고 세상을 대하니 꼰대 소리를 듣는다 해도 억울할 일이 아닌 게다. 이주희 중에서
어제의 나는 '젊었다.' 강골이었고 무엇에든 자신 있었고 그럼으로써 유쾌했다. 오늘의 나는 알 수 없는 무력감, 염증, 통증에 지배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질병과 사망에 대한 감수성'이 급격히 상승하는 중이다. 심지어, 뇌의 명령과 몸의 움직임 사이, 그 격차를 느낀다. 이주희 중에서
"이제 우리는 인종, 성별, 나이처럼 큰 묶음으로 구분되는 거야. 한국의 50대 여자. 이름도 필요 없어. 근데,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이니? 젊을 때의 외모 품질과 상관없이 모두가 비슷해지니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지." 친구는 이런 걸 '외모 평준화'라고 불렀다. 이주희 중에서
지혜로울 줄 알았다. 탯줄을 끊고 반백 년을 살면 웬만한 시련에도 눈한번 감아낼 강인함이 생길 줄 알았다. 일을 구하고 사랑을 알고 살곳을 정하고 후세를 만나는 고된 시기를 넘었으니 미끈하고 노련해질 거라고도 생각했다. 정치, 경제에 대한 독해력이 생길 줄 알았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안정과 번영의 강가를 걷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주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