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토 파실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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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 주민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8. 08:00
이곳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부동산세를 탈루한 이 문제의 납세 의무자는 쉬캐래이넨이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연금생활에 들어간데다 그 나이의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닌데도 순전히 고집으로 밭을 경작하고 있었다. 교회 사무실 사람들은 매키탈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이 두 방문객이 매키탈로에게 이제는 습지에서 나와 보통의 연금 생활자들처럼 아내와 함께 양로원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좀 해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경작자로서의 매키탈로는 마을에 이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신경 쓸 일을 많이 만든다는 것이었다. 허가도 받지 않고 나무를 벤다든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든가, 무고한 사람을 고소한다든가 또는 지역 공무원에 대해 비열한 선동성 기사를 게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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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에 사는 핀란드인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6. 08:00
이렇게 더운 곳에서 누가 사우나를 하겠나? 이곳 날씨는 정말 지랄 같아. 몇 주 동안 푹푹 찌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다에서 끔찍한 토네이도가 몰려와. 보트들은 다 망가지고, 지붕은 몇 마일씩이나 날아가버리지. 수영장은 또 어떻고? 종려나무들이 처박혀 엉망이 되고 말아. 폭풍이 집을 산산조각 내지 않으면 이번에 갱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와 거덜을 내고 가. 집 한쪽 끝으로 달려가면 다른 쪽 끝에서 물건들을 털어가지. 또 아침이면 보험 회사에서 나머지를 챙겨가고 말이야. 나는 지하실에서 잠을 자네. 믿을 곳이 있어야지. 우리 침실에는 깜둥이 하녀가 잠을 자. 깜둥이 년이 자네 침대에서 잔다고 생각해보게. 기분이 어떨지.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힘든 건 가을이 지나도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거야. 스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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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 서류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5. 08:00
아마 이 순간에도 핀란드 군에서는 수백만 장의 서류들이 돌고 있을 걸세. 우편으로 부치기도 하고, 전령을 통하기도 하고, 무전으로 오가기도 하지. 어떤 건 북쪽으로, 어떤 건 동쪽으로 보내네. 작성한 서류에 부대 인장을 쿵 찍고 사인까지 긁적거리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류라는 건 망할 놈의 모기와 비슷해. 모기 하나를 잡으면 다섯 마리가 떼로 몰려오듯이 서류도 한 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 왜 아직 소식이 없느냐고 공문이 다섯 장씩이나 날아오지. 나는 이런 결론을 얻었네. 때려잡는다고 모기를 근절할 수 없듯이 서류도 작성한다고 절대 뿌리 뽑을 수 없다고 말이야. 아르토 파실린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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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사는 악인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3. 09:24
“내가 여기 이러고 다니는 게 사실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나는 항상 몸을 숨겨야 해요. 내가 속이고 사기쳤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서 이곳으로 오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죽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설명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새로 저승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과거 나의 피해자들을 피해 세상 끝까지 도망가려 했죠. 하지만 당신도 이미 눈치 챘듯이 우리 혼령들은 누구나 생각의 속도만큼 빠르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그러니 도망이란 게 불가능하죠. 아마도 나는 어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동굴 속에 칩거하든지, 아니면 내 발로 잡혀 들어가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내 상황이에요.” 아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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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필요한 것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2. 08:00
후스코넨 목사는 인간이 편협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인간의 사고가 아직 그리 발전하지 못하고 학문적인 사실들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는 종교를 통해 부족한 이성을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종교를 빌어서 세계와 만물을 설명할 수 있었으며, 다른 대안이 없었던 탓에 창조주이며 전능한 지배자인 신과 신성神性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다른 무엇이 필요한데요?” “신성, 영원한 삶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이 골치 아픈 세상과 눈에 보이는 일들, 사실들만이 존재한다면 어쩌겠소?” 아르토 파실린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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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맹수는 하나님의 징표를 요구하지 않는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9. 1. 08:00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 후스코넨 목사가 은신처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하나님을 향한 엘리야의 호소와 하나님의 단호한 답변이 뇌리에 떠올랐다. 북쪽의 바다에서 새까만 먹구름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위협적으로 세키르나야 산 위를 검게 뒤덮엇다. 번개가 산에 내리꽂히고 땅이 흔들렸다. 마치 하나님이 곧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제기랄은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조아리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에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흡족한 표정으로 가문비나무 가지 위에 누워 있었을 뿐이다. 숲 속의 맹수는 하나님의 징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뇌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르토 파실린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