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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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으로 살아간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9. 7. 08:00
우리는 그렇게 조반니의 무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까리야스 숲에 다다르자마자 공포 영화 OST마냥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숲에 걸려 있다는 흑마법의 부작용은 어지간한 중세 고딕 소설 관광 보내는 수준이었다. 우선 흡혈 나방이 달려들었고, 미성년 성 착취 포르노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뒤를 이었다. 나로선 세상 처음 보는 끔찍한 것들이었다. 바이러스들에게 쇠파이프를 붕붕 휘두르던 셰르비엥이 상황이 열세임을 감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옆머리를 뽑아 던졌다. "하핫! 내 옆머리에 돌로레스 박사의 만능 백신 나노밤을 심었거든! 이럴 때 써먹는구만!" 아아. 그것은 숭고하고, 장엄한 장면이었다. 인간들이 끝도 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왜 자연이 아직 인간을 봐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인간 중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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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의 유래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9. 6. 08:00
"원시크. 뭐가 새롭니? 다 시공간에 한번쯤 있던 건데? 그리고 8코어 16스레드 CPU가 나오면 뭘 해. 바로 다음 버전이 나와 구형이 될 텐데. 게다가 우린 궁금하잖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구가, 태양계가, 우리 은하가, 우주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존재하고 왜 이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돌아가는지, 그 안에서 인간은 왜 한정적인 시간만 살며,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서 태어나고 죽는 것 따위나 반복하는지 말이야. 그걸 제 맘대로 정해놓고 믿으라고 하는 게 종교라면, 과학이나 시나 프로그레시브 록은 아직 여전히 그걸 파헤쳐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해. K-POP이니 VR-ART 같은 첨단의 대중문화도 좋지. 하지만 청순하고 안이한 주제만 반복하니까 여기선 유행이 안 돼." "하지만 우리가 우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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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돈이 되는 나라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9. 4. 08:00
"여기선 시가 곧 돈이기도 한 건가요? "아니요. 때때로 시가 화폐처럼 통용되기도 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요. 절판되었거나 친필 사인본이라거나, 구하기 어려운 시집은 부자들의 재산 은닉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서민들이야 돈이 없는데 택시를 탔을 때 좋은 시를 읽어주면 요금을 안 내도 되는 정도라오. 그러면 기사가 퇴근해서는 그 시를 또 술집에서 읊으며 공짜 술을 마실 수도 있는 거고. 단, 시가 이토록 많이 유통되다 보니 유명 시인의 시는 이미 오래 전에 닳을 만큼 닳아버려 모르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네르다나 페소아의 시는 삼탈리아 강아지도 외우고 다닐 지경이오. 삼탈리아 젊은 시인들의 시도 발표되자마자 미친 듯이 유통되고 금방 식상해져 소비 주기가 짧소. 시가 마치 짧은 수명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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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위한 보존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9. 1. 08:00
"이 나라 꽤 맘에 드는군요." "나도 그렇소. 외세가 이 조그만 나라마저 망치면 곤란하지. 우린 사유 없는 현대성과, 반성 없는 문물과, 시적 메마름과, 매너 없는 자들이 싫소." "외람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문제가 우려되진 않는지요?" "안 썩소. 보다시피 안은 다 새롭잖소. 우리 집도 디자인만 르네상스풍이지 죄다 신식이오. 괜찮은 과학기술과 디자인은 조화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다 받아들이니까. 굳이 새로운 걸 소비하느라 균형을 깰 필요가 없는 거요. 새롭다는 것들 중에서도 실상은 새롭지 않은 게 수두룩하지 않소. 조화를 위해 보존하는 거라오. 썩는다는 표현은 곤란하지." 박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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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은 악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8. 31. 08:00
"무식한 건 불쌍한 게 아니라 악한 거예요. 타인에게 반드시 피해를 주거든요. 그리고 삼탈리아 국력은 약하지 않아요. 삼탈리아만의 기호품에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중독돼 있으니까요. 중동의 석유 패권이랑 비슷하려나. 만약 분쟁이 생기면 고양이풀이나 담배, 향초, 백신, 양자 컴퓨터 같은 특산품을 안 팔아버리면 그만이에요. 우린 얼마든지 약 올리면서 카드를 맞출 수 있어요." "게다가 우리 국방력도 제법 쓸 만하오. 미친 해커랑 미친 과학자들은 대부분 국방부로 스카우트되거든. 일례로 우린 핵무기가 없는데 남의 걸 발사할 수는 있다더군." 박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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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탈리아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8. 30. 14:40
"역사의 교훈은 인정하지만 삼탈리아는 안 망할 거요. 그러니까, 진짜가 아니라 재미를 추구해서 그런 거 아니오.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겪었지만 웃기려는 나라는 없었잖소? 당나라나 신성로마제국이 시도했지만 실패했지. 게다가 실효성도 있소. 우리처럼 입국 심사하는 나라가 많아진다면 이 세계에 넘쳐나는 여행자들 심장이 얼마나 쫄깃해질까? 남의 땅을 존중하지 않고, 몰려다니며 파괴해버리는 무식한 여행자가 많다는 걸 잘 알잖소. 이건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막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거요." 박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