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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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의 기준이 지배하는 세상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7. 17. 08:00
의사들은 청각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아 인공 와우 이식을 권유했지만, 농인을 '소수언어' 정체성으로 인식했던 농인 공동체에서는 이를 정체성에 대한 '말살'로 여기며 대립했다. 인공 와우 이식이 상당히 보편화된 현재에도 논쟁은 계속 되고 있다. 청각장애 아이에게 이식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고 음성 언어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것이 옳은지, 수어를 통한 언어 발달과 음성 언어를 통한 다소 불완전한 언어 발달 중 어느 것이 아이들을 위한 선택인지 분명한 답은 없다. 김초엽, 김원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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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화되지 않은 낙관론은 현실의 고통을 축소한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7. 13. 08:00
장애인들의 몸은 설령 같은 유형의 장애라 해도 규격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다. 테크노에이블리즘은 장애인들이 실제 삶에서 각각의 기술을 어떻게 느끼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테크노에이블리즘은 장애와 기술에 대한 사회의 협소한 관점을 드러낸다.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 시선들은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미래적인 이미지만을 기술낙관주의의 홍보 대사로 내세운다. 지금 이곳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자꾸만 유예한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수어통역을 실현하는 데 최첨단의 놀라운 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애슐리 슈는 기술을 통한 궁극적인 '장애의 종말'을 이야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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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과학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3. 7. 10. 08:00
휠체어를 탄 '모자란(결여된)' 인간에서 휠체어와 통합된 어떤 존재로 나를 희미하게 인식했을 때 나는 비로소 정체성 물음 앞에 본격적으로 서게 되었다. 과거에는 종교나 국가가 인간의 정체성 물음에 일정한 답을 내려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 성별, 신체조건을 그 사회의 정치적, 신학적 권위가 부여한 내용대로 규정하고 살았다. 우리의 시대는 소위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이며 개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답하기 위해 각자 투쟁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자유주의적 질서 안에서 살아가며, 그 질서는 정치권력, 지배적 문화, 종교, 언어, 미디어, 거대 자본의 영향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강력한 힘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