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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草와 잡 雜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11. 5. 09:14
일본에서는 아마추어들이 하는 야구를 ‘풀야구草野球(동네야구)’라고 한다.
풀야구는 풀이 많은 들판에서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흙만 있는 운동장에서 해도 ‘풀야구’는 ‘풀야구’다. 재미있는 건 잔디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데도 프로야구는 ‘풀야구’가 아니다. 풀경마, 풀축구, 풀스모, 풀연극 등 아마추어가 즐기는 경우, 일본에서 ‘풀’이라는 단어를 접두어로 사용한다. 이때 ‘풀’이라는 단어에는 ‘본격적이 아닌, 가치가 약간 낮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초고草稿, 초안草案 등, 본격적이지 않은 것에도 ‘풀草’이라는 글자가 사용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본래 ‘풀’이란 단어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있다.
‘풀草, くさ’이란 단어에서 ‘쿠く’는 ‘기술을 도모하는 작업’을 의미하고 ‘사さ’는 식물을 의미한다. 즉, ‘쿠사’는 원료가 되는 식물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웃음거리お笑い草’나 ‘이야깃거리語り草’‘저당 잡힐 거리質草:質(저당물)+草(풀)’ 등의 단어에서 풀은 ‘도움이 되는 식물’이 변환되어 ‘재료’ 즉, ‘~할 거리’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풀’하면 본격적이 아니라는 의미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버리고 말았다. ‘풀’의 성격상, 자라도 어차피 ‘나무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부각된 탓이다.
‘잡雑’이란 글자는 ‘잡襍’이라는 한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의衣’와 ‘집集’이란 글자로 구성된 한자로 조각 천을 모아 만든 옷을 의미한다. 때문에 ‘잡襍’이란 한자의 뜻에서 나온 ‘잡雑’은 ‘다양한 것을 넣어 섞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잡지’, ‘잡화’, ‘잡학’, ‘잡담’ 등에서 쓰이고 있는 ‘잡雑’이란 단어의 의미는 단독으로 주인공이 되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잡초의 ‘잡雑’에는 ‘다양’하다는 의미가 있는데, ‘풀草’이란 단어 자체도 ‘다양’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 것을 ‘쿠사구사種種’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풀은 애초에 다양한 존재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도시에서, 잡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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