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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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권력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11. 08:00
그 때문에 좌파는 항상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고, 그런 자신이 스스로 정당하다고 느꼈다. 그 세력 중 일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로 비난받으며 당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알아서 당을 나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따라서 좌파는 항상 분열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영원히 세포 분열의 운명을 타고난 세력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제껏 정권을 잡을 만큼 힘이 강했던 적이 없었다. 약간 비비 꼬인 심정으로 말하자면 정권을 잡지 못한 것도 그들의 복일지 모른다. 2015.5.15 움베르트 에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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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를 생각해보기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10. 08:00
구유는 예수의 탄생을 떠올리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덜 초월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것이었다. 이 성스러운 디오라마에서는 그별과 오두막 위를 나는 두 천사만 제외하면 신학적으로 해석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배치된 사람이 많을수록 구유는 그만큼 더 많은 일상을 보여 주고, 그로써 아이들이 이전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어쩌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대한 일말의 동경을 일깨워 줄지 모른다. 움베르트 에코 '순록과 낙타(2006.12.2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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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7. 09:00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클로스가 개신교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산타클로스가 가톨릭의 성자 바리의 니콜라우스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아시아 미라의 성 니콜라우스인데, 11세기에 그의 유해를 바리로 가져왔다고 해서 라 불린다). 물론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상록수는 이교도의 유산이다. 그것은 기독교 이전의 동지 축제인 스칸디나비아의 율 축제와 관련이 있는데, 교회는 이교도의 전통과 축제를 흡수해서 가톨릭과 하나로 만들려고 의도적으로 그날을 크리스마스 축제로 정했다. 이 문제와 얽혀 있는 마지막 의미를 언급하자면, 소비지상주의라는 새로운 이교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성스러운 의미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고, 그로써 크리스마스트리는 도시의 거리를 화려하게 밝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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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증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6. 08:00
우리 인간은 소크라테스 철학 이전의 가벼움으로 사랑과 증오를 대칭적 대립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증오이고, 반대로 증오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양극 사이에는 수많은 중간 단계가 아주 명확한 형태로 존재한다. -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의 나머지 60억 명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 계명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누구도 증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 소설에서는 사랑을 죽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지만, 신문에서는(최소한 내가 어릴 적 신문에서는) 증오하는 적에게 폭탄을 던짐으로써 사지로 뛰어든 영웅의 죽음이 얼마나 황홀한지 묘사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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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5. 09:00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Leben des Galilei》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요즘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인 인물을 찾기 마련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에게 금메달을 나눠 주기에 급급하다. 2015.1.9 움베르트 에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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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생각해보기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4. 08:00
많은 사람이 역사를 인생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곰팡내 풀풀 나는 서당 훈장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다. 만일 히틀러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면밀히 연구했더라면 과거와 똑같은 덫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부시가 19세기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아니 최소한 소련이 초기 탈레반과 벌인 최근의 전쟁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원정을 다르게 기획했을 것이다. 처칠을 허구의 인물로 여기는 영국의 골 빈 사람들과 15일이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거라는 믿음으로 미군을 이라크로 보낸 부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둘 다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움베르트 에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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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어디에 필요할까?읽고 생각하기/생각거리 2022. 5. 3. 08:00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교사는 대체 하는 일이 뭘까? 서두에 인용한 그 학생은 절반의 진실만 말했을 뿐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좋은 학급을 만들려면 단순히 사실이나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들을 비교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분명 텔레비전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왜 하필 거기서만 그런 분쟁이 끊이지 않는지, 그것도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왜 계속 그러고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곳은 오직 학교뿐이다. - 저장 공간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저장할 가치가 있고..